Chapter 1. 처형 대신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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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처형 대신 감시??? 루시안 폰 에버하르트는 고개를 들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아침 햇살이 수천 갈래로 흩어져 성당 내부를 물들이고 있었다. 푸른빛, 금빛, 백색의 빛줄기가 대리석 바닥 위에서 겹치고 갈라졌다. 그 빛 아래, 왕국의 신관들은 흰 예복을 입고 원형 제단 주위에 서 있었다.
제1부. 흑성검의 계약자
Chapter 1. 처형 대신 감시
대성당의 천장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았다.
루시안 폰 에버하르트는 고개를 들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아침 햇살이 수천 갈래로 흩어져 성당 내부를 물들이고 있었다. 푸른빛, 금빛, 백색의 빛줄기가 대리석 바닥 위에서 겹치고 갈라졌다. 그 빛 아래, 왕국의 신관들은 흰 예복을 입고 원형 제단 주위에 서 있었다.
제단의 중심에는 한 자루의 검이 꽂혀 있었다.
흑성검 발그리안.
그 검은 수백 년 동안 왕국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의 유물이었다. 왕국의 건국 전쟁을 끝낸 검. 용의 시대를 종식시킨 검. 그리고 동시에, 다시 깨어나선 안 되는 검.
검신은 검었다.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빛을 반사하지 않고 삼켜버리는 듯한 색. 가까이 보면 깊은 밤하늘에 자주빛 균열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발그리안은 제단 위에 세워져 있었고, 그 둘레에는 일곱 겹의 봉인진과 금빛 사슬이 둘러져 있었다.
성당의 벽면에는 왕국의 푸른 깃발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왕실 문장, 기사단 문장, 신전 문장. 왕국을 움직이는 모든 상징이 오늘 이곳에 모여 있었다.
연례 봉인의식.
왕국은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의식을 치렀다. 검이 아직 잠들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왕국이 아직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모두가 잊고 싶은 과거를 다시 봉인하기 위해.
루시안은 귀족석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중앙에서 멀었다. 왕족과 원로 귀족들은 앞쪽에 있었고, 군공을 세운 가문과 부유한 상단 귀족들은 그 뒤를 차지했다. 루시안은 그보다도 뒤, 거의 기둥 그림자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초대장은 받았다. 그러나 환영받지는 못했다.
그것이 에버하르트라는 이름의 현재였다.
한때는 왕국의 검이라 불렸던 가문. 그러나 지금은 몰락한 백작가. 명목상으로만 귀족의 지위를 유지할 뿐, 영지도 세력도 상단도 모두 잃은 낡은 이름.
루시안은 그런 시선에 익숙했다.
누군가는 그를 동정했고, 누군가는 비웃었으며, 대부분은 아예 보지 않았다. 그쪽이 차라리 편했다.
그는 조용히 제단을 바라보았다.
신관장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 제183회 흑성검 봉인의식을 거행한다.”
성가가 울렸다.
낮고 느린 선율이 성당의 높은 천장으로 올라갔다가, 오래된 돌기둥 사이로 다시 내려앉았다. 신관들의 목소리가 겹치고, 봉인진의 금빛 문자가 하나씩 빛을 띠었다.
루시안은 무심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
루시안은 눈썹을 좁혔다.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느끼는 답답함. 성가와 향 냄새, 긴 의식 때문에 생긴 피로. 그렇게 넘기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귀 안쪽에서 낮은 울림이 들렸다.
쿵.
그것은 북소리 같았다.
쿵.
아니, 심장 소리였다.
자신의 것이 아닌 심장.
루시안은 본능적으로 제단 위의 검을 바라보았다.
흑성검 발그리안.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저 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그때 기사단 경계선 쪽에서 한 여기사의 시선이 움직였다.
세리아 폰 아르베르.
왕국 직속 기사단의 젊은 기사. 긴 금발과 푸른 눈, 은색 갑옷과 청백색 망토. 그녀는 제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의식을 경호하고 있었다.
성당 안에는 수많은 기사가 있었지만, 세리아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다.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자세가 달랐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의식이 반복되는 행사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세리아만은 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푸른 눈은 차갑고 맑았다. 마치 언제라도 검이 깨어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루시안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제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봉인진의 빛이 흔들렸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다. 금빛 원의 한쪽 끝이 흔들리고, 검을 묶은 사슬 하나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 소리를 알아차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세리아는 곧바로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이상하다.”
그녀의 옆에 있던 기사가 낮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봉인 마력이 흔들리고 있다.”
기사는 제단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쨍그랑.
성당 안의 촛불들이 동시에 꺼졌다가 다시 타올랐다.
신관들의 성가가 끊어졌다.
“봉인진이……!”
제단 위의 금빛 사슬 하나가 검게 물들었다. 곧이어 그것은 유리처럼 갈라졌다.
챙—!
첫 번째 사슬이 끊어졌다.
성당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챙! 챙! 챙!
나머지 사슬들이 연달아 끊어졌다.
흑성검 발그리안의 검신에서 자주빛 마기가 폭발했다. 그것은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았다. 물처럼 흘렀고, 안개처럼 퍼졌으며, 살아 있는 짐승처럼 성당 안을 휘감았다.
신관들이 뒤로 튕겨 나갔다.
“봉인이 무너진다!”
“왕족을 보호하라!”
“제단을 포위해!”
기사들이 검을 뽑았다. 군중이 비명을 질렀다. 대성당의 거대한 창문들이 진동했고, 제단의 바닥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퍼졌다.
루시안은 한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
도망쳐야 한다.
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자신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검이 부르고 있었다.
성당 전체를 휘감던 마기가 루시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마기의 흐름은 분명했다. 제단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검은 자주빛 줄기들이,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을 향해 휘어지고 있었다.
루시안 폰 에버하르트.
그 이름 없는 몰락 귀족을 향해.
“저자에게…… 마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누군가 외쳤다.
그제야 귀족들과 신관들이 루시안을 보았다.
루시안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마기가 그의 옷깃을 스쳤다. 차가웠다. 그러나 동시에 뜨거웠다. 살갗을 베는 얼음 같기도 했고, 피 안쪽에서 타오르는 불 같기도 했다.
그는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찢어질 듯 뛰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죽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신관은 마기에 스치기만 해도 쓰러졌다. 기사들은 방패를 들어도 밀려났다. 귀족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루시안은 서 있었다.
마기는 그를 찢어발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한 원로 귀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공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떠올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버하르트……?”
그 말은 혼란 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들렸다.
신관장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 가문은 이미 힘을 잃었습니다.”
원로 귀족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입술을 떨었다.
“그래서 더 위험한 것이다.”
루시안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검이 울고 있었다.
발그리안은 제단 위에서 격렬하게 떨렸다. 검신에서 뿜어진 마기가 천장으로 치솟고, 성당의 벽을 타고 번지고, 사람들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러나 그 흐름의 일부는 계속해서 루시안에게 빨려 들어왔다.
루시안은 고통에 무릎을 꿇었다.
“윽……!”
그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말이 아니었다. 의미였다.
— 받아들여라.
루시안은 이를 악물었다.
“누구 마음대로…….”
그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아니, 도망쳤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물러서면 마기는 다시 성당을 덮칠 것이다. 그 사실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루시안은 제단을 향해 걸었다.
“멈춰!”
세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한 걸음.
마기가 그의 어깨를 휘감았다.
두 걸음.
검은 줄기가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세 걸음.
성당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루시안은 제단 앞에 섰다.
흑성검 발그리안이 눈앞에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검은 더 아름답고 더 끔찍했다. 검신 안쪽에서 무언가 뛰고 있었다. 심장처럼. 오래전 죽었어야 할 무언가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듯이.
그는 손을 뻗었다.
“손대지 마라!”
세리아가 다시 외쳤다.
루시안은 검자루를 붙잡았다.
순간, 성당 전체가 멎었다.
마기가 폭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깥으로 퍼지지 않았다. 모든 마기가 루시안에게로 빨려 들어왔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몸 안쪽에서 무언가 갈라지는 것 같았다. 검은 마기가 그의 손바닥을 타고 들어와 팔과 어깨,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뼈가 울리고, 심장이 검은 별처럼 박동했다.
루시안은 검을 놓지 않았다.
놓으면 끝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검은 누군가가 붙잡아야 한다. 누군가가 받아내야 한다. 수백 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이 성당 안에서,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끄윽……!”
루시안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바닥의 균열 사이로 자주빛 마기가 솟구쳤다가, 다시 검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을 둘러싼 사슬은 이미 끊어졌지만, 폭주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신관들이 숨을 죽였다. 기사들이 검을 든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귀족들은 그 장면을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침내 발그리안의 울림이 멎었다.
성당 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촛불이 하나둘 다시 타올랐다. 천장에서 떨어지던 파편이 바닥에 굴러갔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루시안은 검자루를 붙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재앙을 멈췄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구원자로 보지 않았다.
처음 움직인 것은 젊은 기사였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마검의 계약자다!”
그 말이 성당 전체를 갈랐다.
곧이어 기사들이 하나둘 루시안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대상 확보!”
“포위해!”
“접근하지 마라!”
루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방에서 검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발그리안을 놓지 못했다. 손을 놓는 순간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했다.
“내가…… 뭘 했다는 거지.”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앞에 있던 기사가 검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지금 베어야 합니다!”
검날이 루시안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챙—!
은빛 섬광이 그 검을 막았다.
세리아 폰 아르베르가 루시안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푸른 망토가 마기의 잔향 속에서 흔들렸다. 긴 금발은 햇빛을 받아 흩어졌고, 은색 갑옷은 깨진 성당의 빛을 반사했다.
“멈춰라.”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젊은 기사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세리아 경! 저자는 이미 검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세리아는 동료 기사의 검을 밀어냈다.
그리고 루시안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동정이 없었다. 그러나 혐오도 없었다.
오직 판단만이 있었다.
“그 검에서 손을 떼라.”
루시안은 숨을 몰아쉬었다.
“뗄 수 있었으면…… 벌써 뗐겠지.”
세리아의 눈이 좁아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왔다. 주변 기사들이 긴장했다.
“세리아, 너무 가까이 가지 마라.”
기사단장이 낮게 경고했다.
세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루시안과 발그리안을 번갈아 보았다.
“검이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더 위험하다.”
“아닙니다.”
세리아는 검을 들어 주변 기사들을 막았다.
“지금 그를 자극하는 쪽이 더 위험합니다.”
루시안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지키는 건가?”
세리아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푸른 눈은 차가웠다.
“착각하지 마라.”
그녀는 몸을 낮추어 루시안의 손목과 검자루를 확인했다.
“나는 너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금속 장갑이 그의 손목 가까이에 닿았다.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루시안의 호흡이 조금 안정되었다.
“더 큰 재앙을 막고 있을 뿐이다.”
말은 차가웠다.
하지만 세리아의 검은 루시안이 아니라, 루시안을 향해 움직이려는 기사들을 막고 있었다.
그 사실을 루시안은 분명히 보았다.
루시안 폰 에버하르트는 그날 영웅이 되지 못했다.
그는 재앙을 막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재앙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는 마검의 폭주를 진정시켰지만, 왕국은 그를 마검과 연결된 위험인물로 규정했다.
그는 대성당의 중앙 복도를 따라 연행되었다.
구속구가 손목에 채워졌다. 양옆에는 왕실 기사들이 붙었다. 군중은 길을 열었다.
그들이 물러선 이유는 예의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루시안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걸을 때마다 쇠사슬이 작은 소리를 냈다.
찰랑.
찰랑.
그 소리가 그의 처지를 대신 설명하고 있었다.
왕궁 지하 감옥은 차가웠다.
그곳에는 성당의 빛도, 깃발도, 성가도 없었다. 젖은 돌벽과 쇠창살, 어둠과 침묵뿐이었다.
루시안은 돌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양손에는 무거운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고, 발목에도 사슬이 걸려 있었다.
마기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몸 안쪽에는 아직 그 감각이 남아 있었다.
발그리안의 손잡이를 붙잡았던 순간. 검은 자주빛 마기가 손바닥을 통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던 감각. 그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무언가가, 그의 안쪽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루시안은 벽에 등을 기댔다.
“흑성검 발그리안…….”
그는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상했다.
그 이름을 누가 알려준 적은 없었다. 의식장에서 신관장이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감각과 달랐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이름 같았다.
루시안은 작게 웃었다.
“이렇게 유명해질 생각은 없었는데.”
목소리는 농담처럼 나왔지만, 끝이 갈라져 있었다.
몰락 귀족. 에버하르트의 마지막 후계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이름.
그런 자신이 하루아침에 왕국 전체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철창 너머로 푸른 망토가 보였다.
세리아였다.
그녀는 감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철창 밖에 선 채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루시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감시인가?”
세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왕궁 상층의 회의실에는 밤이 깊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긴 원탁을 둘러싸고 원로 귀족, 기사단 수뇌부, 신관 대표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논의 주제는 하나였다.
루시안 폰 에버하르트의 처분.
“즉시 처형해야 합니다.”
한 원로 귀족이 말했다.
“흑성검이 인간에게 반응한 사례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는 에버하르트입니다.”
그 말에 몇몇 원로들의 얼굴이 굳었다.
젊은 귀족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늙은 자들은 알고 있었다.
에버하르트라는 이름이 단순히 몰락한 귀족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신관 대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마기를 흡수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죽인다면 발그리안이 다시 폭주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살려두자는 말인가?”
“살려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회의실 중앙에 서 있던 세리아가 입을 열었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통제해야 합니다.”
“통제?”
“루시안 폰 에버하르트는 현재 흑성검과 비정상적인 공명 상태에 있습니다. 그를 죽이는 것이 검을 안정시키는지, 오히려 더 큰 폭주를 부르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하 감옥에 계속 가두면 되지 않나.”
“감옥은 마력 억제에는 적합하지만, 장기 관찰에는 부적합합니다.”
세리아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감정 변화, 수면 중 반응, 신체 상태, 발그리안과의 거리별 반응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폐쇄된 감옥보다 제한된 일상 환경에서 감시하는 편이 더 안정적입니다.”
한 귀족이 비웃듯 말했다.
“그 괴물을 일상에 풀어놓자고?”
세리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풀어놓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택에 연금하자는 것입니다.”
회의실 끝, 왕좌에 앉아 있던 왕이 침묵을 깨뜨렸다.
“세리아 폰 아르베르.”
세리아는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 폐하.”
“그대가 직접 감시하라.”
회의실이 술렁였다.
왕은 말을 이어갔다.
“루시안 폰 에버하르트를 에버하르트 저택에 연금한다. 외부 접촉은 제한하고, 모든 행동은 왕실 기사단의 감시 아래 둔다.”
왕의 시선이 세리아에게 내려앉았다.
“그중 가장 가까운 감시역은 그대다.”
세리아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명령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루시안을 지키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감시하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검으로 그를 끝내기 위해.
“명 받들겠습니다.”
며칠 뒤, 루시안은 지하 감옥에서 나왔다.
처형대가 아니었다.
그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손목에는 여전히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고, 양옆에는 왕실 기사들이 붙어 있었다. 며칠 만에 보는 햇빛은 눈이 아플 정도로 밝았다.
왕궁 앞뜰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귀족들, 기사들, 신관들, 호기심 많은 관리들.
그들은 마검의 계약자라 불리게 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안은 그 시선을 모른 척했다.
앞쪽에서 세리아가 걸었다.
은색 갑옷. 푸른 망토. 곧은 등.
그녀는 호위처럼 보였다. 하지만 루시안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앞서 걷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도망칠 수 없도록 길을 정하고 있을 뿐이다.
“세리아 경.”
세리아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나?”
그녀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에버하르트 저택.”
루시안은 잠시 침묵했다.
“내 집으로?”
“연금 장소로.”
루시안은 작게 웃었다.
“같은 장소를 두고도, 말이 꽤 다르군.”
그제야 세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푸른 눈이 루시안을 향했다.
“살아남은 것에 감사해라.”
“살아남은 건가?”
루시안은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구속구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판단하기 어렵군.”
세리아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루시안은 그것을 보았다.
에버하르트 저택은 예전과 같았다.
높은 천장. 오래된 초상화. 검은 목재 가구. 먼지가 얇게 내려앉은 서재와,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침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정문 밖에는 왕실 기사들이 서 있었다. 정원에도, 후문에도, 마구간 옆에도 감시병이 배치되어 있었다.
저택의 문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루시안이 나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방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목의 구속구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세리아가 들어왔다.
갑옷 차림 그대로였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루시안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감옥에서 저택으로 왔는데, 구속구는 그대로군.”
세리아는 그의 앞에 섰다.
가까웠다.
성당에서 보았던 거리보다, 감옥의 철창 너머보다, 왕궁 앞뜰의 행렬보다 더 가까웠다.
그녀는 루시안의 손목을 잡았다.
갑옷 장갑의 감촉은 차가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거칠지 않았다. 조심스러웠다.
루시안은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조심하는군.”
세리아는 열쇠를 구속구에 꽂았다.
“네 손목을 부수면 관찰에 지장이 생긴다.”
딸깍.
쇠가 풀리는 소리가 방 안에 작게 울렸다.
오른쪽 구속구가 풀렸다.
루시안은 손목을 들어 올렸다. 쇠가 눌렀던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세리아의 시선이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루시안은 보았다.
“걱정하나?”
세리아는 곧바로 시선을 올렸다.
“상태를 확인한 것뿐이다.”
“그 둘의 차이가 큰가?”
“크다.”
그녀는 두 번째 구속구를 풀었다.
이번에는 더 가까이 몸을 숙였다. 루시안은 그녀의 금발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푸른 눈은 차가웠지만, 완전히 얼어붙은 것은 아니었다.
경계심. 의무감. 그리고 그녀 자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보이는 조심스러움.
마지막 사슬이 풀렸다.
구속구가 바닥에 떨어졌다.
묵직한 소리였다.
루시안은 자유로워진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손은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무거운 것이 생긴 기분이었다.
세리아는 몸을 일으켰다.
“오늘부터 너는 이 저택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루시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외출, 면담, 서신, 식사, 수면. 네 모든 행동은 내 감시 아래에 놓인다.”
창밖에서 바람이 들어왔다. 커튼이 흔들렸고, 오후의 빛이 세리아의 갑옷 위에서 잘게 부서졌다.
루시안은 잠시 말을 잃었다.
“수면까지?”
“마검은 네 의식이 약해질 때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부터 24시간 함께라는 뜻인가?”
세리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감시다.”
“나는 아직 동거라고 말한 적 없는데.”
세리아의 푸른 눈이 그를 똑바로 향했다.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 마라.”
루시안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처음으로, 이 감옥 같은 저택 안에서 조금은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왕국이 보낸 감시자였다. 필요하다면 자신을 베어야 하는 기사. 자신의 모든 행동을 기록하고, 보고하고, 통제할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하 감옥의 어둠보다, 그녀의 감시는 덜 차가웠다.
세리아는 문 쪽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오늘 밤부터 나는 네 방 앞을 지킨다.”
“정말 문 앞에서 밤을 새울 생각인가?”
“필요하다면 방 안에도 들어온다.”
루시안은 잠시 말을 잃었다.
세리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정말로 임무상의 필요라고 믿고 있는 얼굴. 혹은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안 되는 얼굴.
루시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세리아 폰 아르베르.”
그녀가 멈췄다.
“너는 나를 죽이러 온 건가, 지키러 온 건가?”
방 안이 조용해졌다.
먼지 입자가 햇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창밖에서는 감시병들이 교대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세리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루시안의 얼굴에서 손목으로, 다시 얼굴로 돌아왔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나는 네 편이 아니다.”
그 말은 차가웠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네가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지도 않을 것이다.”
루시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리아는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오늘부터 나는 네 감시역이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선언처럼 덧붙였다.
“네가 잠들 때도, 깨어 있을 때도, 마검이 다시 반응하는 순간에도.”
푸른 눈이 흔들림 없이 루시안을 붙잡았다.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는다.”
루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처형은 피했다. 감옥에서도 나왔다. 구속구도 풀렸다.
그러나 그의 진짜 감금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감금의 이름은, 세리아 폰 아르베르였다.